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야시 곤스케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그의 장남 하야시 야스(林安)는 1921년 [[고등문관시험]]에 합격해 외교관이 되었고 사위 오카모토 다케조(岡本武三) 역시 외교관이 되어 주 [[이란]] 대사를 지냈다. * 우습게도 하야시 곤스케의 고향 [[아이즈 번]]과 [[이토 히로부미]]의 고향 [[조슈 번]]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 [[지역갈등/아시아|반목하는 사이]]였다. 더군다나 하야시 본인도 어릴 적에 [[보신 전쟁]]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이다. 그러나 한국을 강점하겠다는 목표 앞에서 이 두 작자들은 지역감정도 잠시 잊고 하나가 되었다. * 오늘날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,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앞에서 남산인권숲 쪽으로 퇴계로26가길을 따라 들어가면 초입에 구 통감부 관저 터가 나온다. 1936년에는 관저의 경내에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세웠는데, 이듬해에 현 청와대 터에 총독관저를 완공하자 구 통감관저 터를 시정기념관으로 바꾸었다. 1945년 광복 후에는 통감관저 건물은 국립민족박물관, 국립박물관 남산분관, 국군연합참모본부 등으로 쓰이다 1960년 이후 철거되어 완전히 잊혔고, 하야시의 동상도 어느새 누군가가 파괴했다.[* 누가 파괴했는지는 불명] *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이 2005년 8월 구 통감관저 터를 찾다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을 받치던 좌대에 쓰인 판석 몇 점을 발견했는데, 여기에는 '남작하야시곤스케군상(男爵林權助君像)'이라는 명문이 있었다. 2010년에는 판석에 새긴 명문을 누군가가 훼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. 2015년 8월 서울시는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판석을 모아 야외에 거꾸로 세워서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다. [[http://world.kbs.co.kr/service/news_view.htm?lang=k&Seq_Code=245521|KBS 보도]] 좌대 위에 있던 동상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